NAUMACHIA
3. 15 — 4. 13, 2024
서문 | 전민지
그래픽 디자인 | MATERIALS
도움 | 스티븐 히, 조성혁
주관 | 캡션서울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 특별시




NAUMACHIA
15 March — 13 April, 2024

Text | Minji Chun
Graphic Design | MATERIALS
Helpers | Steven He, Sunghyuck Cho


Organized by Caption Seoul
Sponsored by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Seoul Foundation for Art and Culture

NAUMACHIA》 Video Archive 
Camera, first edit by Kisung Jun
Final edit by Seongeun Lee & Steven He
이성은 개인전 《Naumachia
‘하이드로신’의 도시 짓기, 그러나 유영하듯이

전민지
도시는 여전히 해명되지 못한 문제다. 이곳을 걷는 이들, 이곳에 사는 이들은 그 불가해한 시공간적 조건에 기이하게 전염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자동화 시스템에 편입된 현대인 들은 선택권이 주어진 경우에도 차라리 감속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성과 논리로 정교하게 포장된 건물의 세계는 운전대 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실 콘크리트로 단단히 구축된 공간 이면에는 섣불리 만들어진 근대적 권력관계와 구조가 웅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양극화는 개인의 삶에 손쉽게 틈입하고, 파국에 가까운 아노미 상태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잔존한다. 즉, 현대의 도시들은 기득권-남성적 유토피아에 설계의 근간을 두고 있지만 디스토피아적 실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순의 결정체로서 작동한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레슬리 컨(Leslie Kern)이 짚었듯이,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준이 남성적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 환경은 “돌, 벽돌, 유리, 콘크리트로 쓴 가부장제”로 기능할 뿐이다. 1)
이러한 맥락에서, 이성은은 오작동하는 세계의 풍경으로부터 소외된 커뮤니티의 내러티브를 포착하고 증폭해 왔다. 특히 ‘압축적 근대화’의 시대를 건너온 한국의 경우, 신분 상승이라는 공동의 환상과 이에 대한 맹목적 추종, 나아가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겪었다. 더 이상 꿈꿀 수도, 바라볼 수도 없는 이상향을 한가운데에 두고 도시인은 점차 분열했다.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지속된 도시계획 과정에서 이들은 무력하게 주변화되어 갈 곳을 박탈당하곤 했다. 그 이후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유령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거리 곳곳의 폐허를 쏘다녔다. 이에 작가는 타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도시를 말끔하게 지탱해 온 전형적 어법을 교란한다. 그간의 사회 체제가 남성성과 그로 인해 실재하게 된 권력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상, “지배 시스템에 의해 전달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요구를 재검토하고 재 설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 ‘도시 문제’는 종결되지 않은 문제적 대상이다. 로마 시대 고대 극장에서의 대규모 모의 해전을 의미하는 전시 제목 ‘나우마키아(naumachia)’에서 알 수 있듯이, 전시는 위 문제를 재고하는 데 앞서 일차적으로 물과 도시를 대질시킨다. 여기에 서 물은 장소인 동시에 수단이며, 주체성을 담보로 하는 사회적 은유다. 작가는 물과 도시의 역학 관계를 재편하는 동시에 그가 지닌 변혁의 가능성을 시적으로 창출한다. 이와 관련하여 큐레이터 브론윈 베일리-차터리스(Bronwyn Bailey-Charteris)는 현대를 물의 시대, 즉 ‘하이 드로신(hydrocene)’으로 읽어낸 바 있다. 3) 이성은이 구축한 공간이 위 개념을 빌려와 물의 권력과 잠재력을 펼쳐낼 때, 과거에 머무르던 형상과 현상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다시 말해, 물이라는 투명한 대상에 미처 부여되지 못했던 존재론적 부피가 가시화되는 셈이다. 이제 이곳은 신체가 부유하는 공간이자,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된다.
전시의 전반부는 물의 파괴적 능력을 전면에 앞세운다. 세트장 구조 내에 구현된 비 디오 설치 <Falls>(2023-2024)은 화장실이라는 기존 공간의 맥락을 스크린 안팎으로 유지하면서도 전복시킨다. 전시장이라는 제도적 영역은 영화와 병치되었을 때 완벽히 맞물리는 장외 공간이 된다. 초현실적인 내러티브는 꿈과 현재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로 전개되는데, 여기에서 등장인물은 문이나 환풍기가 보이지 않는 화장실을 강박적으로 청소하기 시작한다. 비록 주체성을 잃어 나약해진 인간이지만, 그는 목적 없는 노동을 통해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공은 홍수 현장으로 환원되는 종말론적 상황에 갇히고 만다. 추측 하건대 이 여성은 소외된 이들이 떠도는 대도시의, 그리고 그곳에 사는 우리의 또 다른 자아 다. 작가는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물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도시의 남성적 이상이 서로 결탁해 온 가혹한 태도를 다시금 시연한다.
동시에, <Falls>의 곳곳에 거칠게 등장하는 만화적 이미지는 1950년대 미국을 상기 시킨다. 4) 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경제 상황과 더불어 ‘아메리칸드림’에 젖은 모든 미국의 가정이 –그러나 실상은 백인 중산층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행복과 풍요를 주된 목표로 삼았다. 그 전국적 유행은 당시 광고, TV 프로그램 등에서 환히 웃고 있는 가족사진 등으로 대변되었고, 욕망의 획일화는 점차 가속도를 얻어 시각문화의 한 부분으로 현상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장면은 이번 전시에서 전경화되는 세트장 뒷면의 존재를 통해 재차 궤도에 오른다. 환상과 현실은 무너져가는 벽 사이에 혼재되고, 기쁨과 절망은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벽돌에 기대어 관객을 멍하니 응시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서 배회하며 방황하는 이들의 외침은 이명이 되어 귓가를 맴돈다.
그런가 하면, 전시의 후반부는 물을 또 다른 서막으로 바라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풍경화로 읽히는 2024년 신작 <Floatage>에는 2채널 비디오에 걸쳐 화면의 왼편으로 나 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의지와는 달리 잘 움직이지 않는 뗏목과 자욱한 안개가 거푸 길을 막아 세우더라도, 여자는 한곳에 머무르는 대신 쉬지 않고 바닷가로 향한다. 이는 대항해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범선의 궤적과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게 영상은 관객의 시선을 끝없이 왼쪽으로, 이후에는 프레임 바깥 어딘가 공생의 땅으로 이끈다. 거대한 파도를 이겨내기 위해 때때로 숨을 참아야만 하는 세계에서 누군가는 대안을 찾고, 누군가는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전시장 바닥에 놓인 초록빛의 유기체 조각은 파괴의 잔재가 아닌 환생의 증거물이며, 오래된 해저 유물이 아니라 공동의 생태계를 암시하는 에코페미니즘적 생명이다.
결국 이성은의 작업은 현대 도시의 균질화된 그리드에서 감광판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계의 시각적 파편이 전시장에서 물의 언어를 거쳐 제한 없이 조합될 때, 획일성만을 내재하던 형상은 상투적 의미에서 벗어나 다시금 발굴된다. 무엇보다도, 물이 잠식하고 있는 각각의 영상은 탈라소필리아(thalassophilia)와 탈라소포비아(thalassophobia) 5) 사이를 가로지르며 잠재력과 두려움을 함께 선취한다. 이제 다음 단계에 대한 결단은 관객에게 유보된다. 낭만과 역동의 이름으로 가려진 디스토피아를 낱낱이 교차점검할 것인가, 혹은 모래사장을 나뒹굴던 타자의 흔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재)창출할 것인가? 영상을 통해 한 꺼풀씩 벗겨지는 도시 현실을 느릿한 파도가 집어삼킬 때, 우리는 반복되지 않을 역사에 작별 인사를 고해야 한다. 아쉬움 없는 표정으로, 유영하는 물의 손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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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slie Kern, Feminist City: Claiming Space in a Man-Made World, Verso, 2020.
2) 사야크 발렌시아, 최이슬기 옮김, 『고어 자본주의』, 워크룸 프레스, 2021. p. 191.
3) 베일리-차터리스의 하이드로센 생태미학 이론은 2024년 5월 중 출간될 예정이다. Bronwyn Bailey-Charteris, The Hydrocene: Eco-Aesthetics in the Age of Water, Routledge, 2024.
4) 이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을 참조할 것. Karal Ann Marling, As Seen on TV: The Visual Culture of Everyday Life in the 1950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5) 탈라소필리아와 탈라소포비아는 각각 바다 및 대양에 대한 사랑과 공포를 의미한다.
Seongeun Lee Solo Exhibition 《Naumachia》​​​​​​​
Constructing a ‘Hydrocene’ city, yet as if swimming

Minji Chun 
The city remains an unresolved issue. Its unfathomable spatiotemporal conditions bizarrely infect those who walk and live here. Even when given the choice, contemporary individuals embedded within capitalist automated systems prefer not to slow down. The world of buildings, meticulously wrapped in reason and logic, is not much different from a sports car speeding on a highway without a steering wheel. Behind the solidly built concrete spaces lie hastily established modern power relations and structures lurking in the shadows. As a result, polarisation easily infiltrates individual lives, and a state of near-anomie persists, unaffected by the passage of time. Contemporary cities, while designed on the premise of a privileged-masculine utopia, operate as embodiments of contradictions, unable to escape their dystopian reality. As feminist geographer Leslie Kern has pointed out, the urban environment in which we live functions merely as a ‘patriarchy written in stone, brick, glass, and concrete’, due to the male-centric criteria it is built upon. 1)
In this context, Seongeun has captured and amplified the narratives of communities alienated from a malfunctioning world. Particularly in Korea, which has experienced ‘compressed modernisation’, the populace has faced simultaneous socio-economic conflicts driven by a common illusion of social mobility and a blind adherence to it. Urban dwellers have gradually fragmented, surrounded by an unattainable utopia. In the process of urban planning under the guise of national development, they have been powerlessly marginalised and deprived of places to go, causing the spectre of gentrification to roam the ruins of the streets cynically. The artist disrupts the conventional rhetoric that has neatly sustained the city to bring together the Others and unravel their private stories. Given that the prevailing social system is based on masculinity and the power it engenders, there is a ‘need to reassess and recalibrate the demands of hegemonic masculinity conveyed by the dominant system’. 2) 

Hence, for the artist, ‘urban issues’ remain unresolved. The exhibition title Naumachia, referring to large-scale mock sea battles in ancient Roman theatres, initially confronts the issue of water and cities. Here, water serves as a place and a means, a social metaphor guaranteeing agency. The artist poetically generates the possibility of transformation while reconfiguring the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water and cities. Curator Bronwyn Bailey-Charteris has identified the present as the age of water, or the ‘Hydrocene’. 3) When Lee’s space utilises this concept to unfold the power and potential of water, past forms and phenomena are swept away by waves. In other words, the ontological volume that was never bestowed upon water, a transparent entity, becomes visible. Now, this place becomes a space where the body floats, marking the beginning and end of everything.
 
The first half of the exhibition highlights the destructive power of water. The video installation Falls (2023– 2024), set within a stage structure, subverts the context of a conventional bathroom space both inside and outside the screen. The institutional area of the exhibition hall becomes a space perfectly meshing with the cinema when juxtaposed, creating an extraterritorial space. The surreal narrative unfolds where the distinction between dreams and reality is blurred, with a character compulsively cleaning a bathroom devoid of doors or vents. Despite losing agency and becoming weakened, the individual finds a semblance of comfort through labour. However, as time progresses, the protagonist becomes trapped in the eschatological situation of a flood. It is presumed that this woman represents an element of our own selves, wandering the metropolis of the marginalised. By constructing a world of water from which escape seems impossible, the artist re-enacts the harsh attitudes fostered by the collusion of urban masculine ideals. 

Simultaneously, the cartoonish images throughout Falls evoke 1950s America. 4) In the context of the economic boom following World War II, every American household—though limited to the white middle class—adopted happiness and prosperity as their main goals, steeped in the ‘American Dream’. This nationwide trend was represented by smiling family photos in advertisements and TV programs, and the standardisation of desire gradually gained momentum, becoming part of visual culture. This past scene is brought back into orbit through the existence behind the set, where fantasies and reality intermingle among crumbling walls, and joy and despair lean against disorderly bricks, leaving the audience in a daze. The cries of those wandering in an inescapable maze become a ringing in their ears. 

Meanwhile, the latter part of the exhibition views water as another prologue. The 2024 new work Floatage, perceived as a post-apocalyptic landscape painting, features a protagonist moving across a two-channel video. Despite a raft that hardly moves and dense fog obstructing the path, the woman continues towards the shore instead of staying put, in stark contrast to the grand trajectories of sailing ships during the Age of Exploration. Thus, the video endlessly draws the viewer’s gaze to the left, eventually leading to a land of coexistence outside the frame. In a world where one must occasionally hold one’s breath to overcome giant waves, someone finds an alternative and is reborn. Therefore, the green glass sculptures on the floor of the exhibition hall are not a remnant of destruction but evidence of rebirth, and it is not an ancient underwater relic but a life of ecofeminism, implying a shared ecosystem. 

Ultimately, Seongeun’s work serves as a photo plate in the homogenised grid of the contemporary city. When the world’s visual fragments combine unrestrictedly through the language of water in the exhibition space, the forms that only embodied uniformity escape their conventional meaning and are rediscovered. Above all, each video inundated by water straddles the line between thalassophilia and thalassophobia 5), capturing both potential and fear. The next step is left to the audience’s discretion. Will they meticulously reassess the dystopia hidden behind the names of romance and dynamism, or will they (re)create a community from the traces of Others that once roamed the sandy beaches? As the city’s reality, unveiled layer by layer through the videos, is slowly engulfed by gentle waves, we must bid farewell to a history that will not repeat itself— with no regrets and through the gestures of floating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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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slie Kern, Feminist City: Claiming Space in a Man-Made World, Verso, 2020.
2) Sayak Valencia, translated by Choi Lee Seul-gi, Gore Capitalism, Workroom Press, 2021. p. 191. 
3) Bailey-Charteris’s Hydrocene eco-aesthetics theory is scheduled to be published in mid-May 2024. Bronwyn Bailey-Charteris, The Hydrocene: Eco-Aesthetics in the Age of Water, Routledge, 2024.
4) For a detailed analysis on this, refer to the following: Karal Ann Marling, As Seen on TV: The Visual Culture of Everyday Life in the 1950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5) Thalassophilia and thalassophobia refer to the love and fear of the sea and ocean, resp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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